소문의 진짜 주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 이 짧은 구절에 오늘 본문 전체의 열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밖까지 흘러간 그 소문의 진짜 주어는 솔로몬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람들은 솔로몬의 이름을 말했지만, 성경은 그 이름 앞에 하나님의 이름을 먼저 적어 두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한 민족을 통해 열방이 참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복의 저수지가 아니라 수로였습니다. 그러니 낙타에 향품과 금을 싣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이 이방 여왕의 행렬은, 훗날 별을 따라 한 아기 앞에 무릎 꿇게 될 동방박사들의 그림자입니다.
그런데 여왕이 온 목적은 예배가 아니라 시험이었습니다. 본문이 쓰는 히브리어 '히도트'는 수수께끼라는 말입니다. 그녀는 검증하러 왔습니다. 오늘도 세상은 교회에 이렇게 묻습니다. "정말 그 하나님이 계신다면 무엇을 보여 줄 수 있습니까?" 그때 우리가 내미는 것이 무엇인지가 우리의 신앙을 폭로합니다.
소문은 통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것은 그 소문의 주어뿐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감탄하며 돌아가면 그것은 나의 명성이지만, 나를 보고 하나님을 물으며 돌아가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오늘 하루 내가 서는 자리마다 문장의 주어를 하나님께 돌려 드립시다.
묵상 질문
사람들이 나를 통해 듣게 되는 "소문"의 주어는 나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오늘 하루 나의 말과 일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날 한 지점은 어디입니까?
누군가 나에게 "당신의 하나님이 계신 증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무엇을 내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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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주님, 제 이름이 아니라 주의 이름이 들리게 하옵소서. 저를 통해 복이 고이지 않고 흘러가게 하시고, 오늘 제가 서는 자리마다 주님이 주어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덟 가지 목록
성경은 여왕이 본 것을 꼼꼼히 나열합니다. 지혜, 왕궁, 식탁의 음식, 신하들의 좌석, 시립한 시종들, 관복, 술 관원, 그리고 성전에 올라가는 층계. 모두 여덟 가지입니다. 성경 기자가 이렇게 항목을 세어 가며 적는 데에는 뜻이 있습니다.
첫 항목만 "지혜"이고 나머지 일곱은 전부 눈에 보이는 것, 만져지는 것, 규모로 환산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유니폼과 의전까지 목록에 올랐습니다. 이것은 지혜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스케일에 대한 감탄입니다. 지혜는 목록의 첫 줄에 이름만 올린 채, 나머지 일곱 줄에 밀려나 있습니다.
요한은 세상의 것을 세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여왕의 목록은 그 세 가지를 여덟 항목으로 풀어 쓴 것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덧붙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목록에 오른 여덟 가지는 사백 년 뒤 바벨론 군대의 손수레에 실려 모두 사라집니다.
스바 여왕은 특별히 못난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는 지극히 표준적인 인간입니다. 무엇을 소유했는가, 얼마나 큰가, 몇 명을 거느리는가. 삼천 년 전의 목록이 오늘 아침 내 마음속 목록과 놀랍도록 같습니다. 문제는 그 목록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것이 유일한 목록이 되는 것입니다.
묵상 질문
내가 사람을 평가할 때 은연중에 사용하는 기준 세 가지를 적어 보십시오.
그 기준 중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은 무엇입니까?
내 목록의 첫 줄에 올려야 할 항목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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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주님, 제 마음의 저울이 세상의 눈금으로 되어 있음을 봅니다. 지나가는 것을 남는 것보다 앞자리에 두었던 저를 용서하시고, 말씀으로 그 눈금을 다시 새겨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층계에서 멈춘 사람
목록의 마지막이 가장 뼈아픕니다.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는 층계." 여왕은 성전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감탄한 것은 성전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아니라 성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었습니다. 문 앞까지 와서 문을 열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르는 길은 보았으나, 길 끝에 계신 하나님은 보지 못한 것입니다. 여기에 종교와 신앙의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종교는 하나님께 가는 길을 감상하고, 신앙은 그 길을 걸어 하나님을 만납니다.
주님은 성경을 연구하던 사람들에게 같은 지적을 하셨습니다. 성경을 부지런히 파헤치면서도 정작 성경이 가리키는 분께 오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손가락이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 끝만 들여다본 것입니다. 성경만큼 거룩한 층계가 또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조차 목적지가 아니라 통로입니다.
좋은 설교, 은혜로운 찬양, 따뜻한 공동체, 잘 짜인 프로그램. 이 모든 것은 층계입니다. 층계는 밟고 올라가라고 있는 것이지 그 앞에서 사진을 찍으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은혜의 수단에 감탄하다가 은혜의 주인을 놓칠 수 있습니다. 오늘 나는 층계 앞에 서 있습니까, 층계를 밟고 있습니까?
묵상 질문
내 신앙생활에서 수단이 목적이 되어 버린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나는 층계 앞에 서 있습니까, 층계를 밟고 올라가고 있습니까?
말씀을 읽고 예배를 드린 뒤, 나는 하나님을 만났습니까 아니면 프로그램을 평가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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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주님, 은혜의 통로에 머물지 않고 은혜의 주인이신 주님께 나아가게 하옵소서. 층계를 감상하다 문 앞에서 돌아서는 자 되지 않게 하시고, 끝까지 올라가 주님을 뵙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감탄이 고발이 될 때
신명기 17장에서 하나님은 장차 세워질 왕에게 세 가지를 금하셨습니다. 병거와 말을 많이 두지 말 것, 아내를 많이 두지 말 것,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 왕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보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먼저 말씀하신 것입니다.
열왕기상 10장과 11장을 이어서 읽어 보십시오. 솔로몬은 병거 천사백 대와 마병 만 이천 명을 두었고, 아내가 칠백 명 후궁이 삼백 명이었으며, 은을 예루살렘에서 돌같이 흔하게 만들었습니다. 세 가지 금령을 정확히 세 가지 다 어겼습니다. 우연이 아니라 순서까지 그대로입니다. 성경 기자는 지금 대조표를 만들고 있습니다.
여왕이 "와" 하고 감탄했던 그 목록이, 성령께서 쓰신 기록에서는 "이것이 그가 하나님의 규례를 어긴 증거다"라는 고발이 되고 있습니다. 같은 사실을 두고 사람의 기록과 하나님의 기록이 정반대의 결론을 냅니다. 세상이 박수 치는 자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고발당하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두 장의 이력서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이력서에는 이룬 것들이 적혀 있고, 하나님 앞의 이력서에는 그것을 어떻게 이루었는지가 적혀 있습니다. 두 장이 같은 사람의 것이 맞는지, 오늘 정직하게 펼쳐 봅시다.
묵상 질문
남들이 부러워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정직하지 못한 나의 영역이 있습니까?
지금 내가 "쌓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박수를 받았던 일 가운데 하나님 앞에 다시 여쭈어야 할 것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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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주님, 사람의 박수를 하나님의 인정으로 착각하지 않게 하옵소서. 감탄받는 일이 고발되는 일이 되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제 삶을 주의 저울에 올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방 여왕의 입에서 나온 고백
"여호와께서 당신을 세워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이 정확한 고백이 언약 백성이 아니라 이방 여왕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왕권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정작 왕 자신보다 손님이 더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시편 72편에서 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 건지고 도울 자 없는 가난한 자를 건지는 왕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은 그 아들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왕은 지금 왕궁을 짓고 식탁을 차리고 관복을 맞추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실패는 능력의 실패가 아니라 방향의 실패였습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왕이었습니다. 은사가 부족해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은사의 방향이 자기에게로 향해서 무너졌습니다. 아래로 흘러야 할 물이 위로 고이면 그것은 더 이상 강이 아니라 웅덩이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순서가 중요합니다. 능력을 구하기 전에 방향을 구해야 합니다. 더 많은 은사를 받고도 더 깊이 무너질 수 있고, 적게 받고도 온전히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 하나를 떠올리고, 그것이 지금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 확인합시다.
묵상 질문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지금 그 은사는 어느 방향을 향해 사용되고 있습니까?
내 주변에 "도울 자 없는"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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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주님, 능력을 더해 주시기 전에 방향을 먼저 바로잡아 주옵소서. 받은 것이 제게 고이지 않고 이웃을 향해 흐르게 하시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자리로 저를 보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솔로몬보다 더 크신 이
예수님은 친히 이 사건을 인용하셨습니다. 땅 끝에서 온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그 먼 길을 왔는데,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 바로 앞에 서 계신데도 이 세대는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감탄은 거리가 멀수록 쉽고, 순종은 가까울수록 어렵습니다.
그분은 왕궁을 지으신 분이 아니라 머리 둘 곳 없으셨습니다. 금방패를 두르신 분이 아니라 벌거벗겨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화려한 식탁이 아니라 자기 살과 피를 상에 내놓으셨습니다. 시립을 받으신 분이 아니라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 앞에 무릎 꿇으셨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층계가 아니라, 자기 몸을 헐어 친히 성전이 되셨습니다.
여왕의 여덟 가지 목록을 하나씩 뒤집으면 그리스도가 보입니다. 솔로몬은 쌓아서 커졌고 그리스도는 비워서 크셨습니다. 빌립보서가 말하는 '더 크심'은 규모가 아니라 낮아짐의 깊이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고, 알아본 사람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물질과 시간과 건강은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고통받는 이웃을 향해 흘러가지 않을 때 결국 낭비된 인생이 됩니다. 내일 주일, 층계 앞에서 감탄하다 돌아서지 말고, 그 층계를 밟고 올라가 왕을 뵙는 백성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십시오.
묵상 질문
이번 한 주 나는 무엇을, 누구에게 흘려보냈습니까?
내일 예배를 앞두고 주님께 정직하게 아뢸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쌓아서 커지려는 마음을 비워서 커지는 마음으로 바꾸려면 무엇을 내려놓아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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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
솔로몬보다 크신 주님, 제 인생이 쌓이다 썩지 않고 흘러가 살리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 감탄만 하고 돌아서는 자가 아니라 층계를 밟고 올라가 주님을 뵙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 주간 정리 — 주일예배를 준비하며
"스바 여왕의 방문" — 열왕기상 10:1-8
| Day 1 | 소문의 주어를 하나님께 돌려 드리라. | |
| Day 2 | 여덟 가지 목록 중 일곱은 지나가는 것이다. | |
| Day 3 | 층계는 감상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밟고 오르라고 있는 것이다. | |
| Day 4 | 사람의 감탄이 하나님 앞에서는 고발이 될 수 있다. | |
| Day 5 | 실패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다. | |
| Day 6 | 솔로몬은 쌓아서 커졌고, 그리스도는 비워서 크셨다. |
한 주간의 기도제목
감탄의 방향이 바로잡히도록 — 규모가 아니라 주님을 보게 하옵소서.
받은 은사가 이웃을 향해 흘러가도록 — 고이지 않고 흐르게 하옵소서.
정의와 공의가 살아 있는 신앙 공동체가 되도록 — 다함교회를 그 통로로 삼아 주옵소서.
주일을 준비하는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한 주간 말씀 앞에서 제 마음의 목록을 살피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보이는 것에 감탄하다가 보이지 않는 주님을 놓쳤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일은 층계 앞에서 돌아서지 않고 끝까지 올라가 왕 되신 주님을 뵙게 하시고, 받은 은혜가 이웃을 향해 흘러가는 한 주를 열어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솔로몬은 쌓아서 커졌고, 그리스도는 비워서 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