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 다함교회 주간 묵상집

대적자들

열왕기상 11:1–8

솔로몬은 무너졌으되 바깥의 적 때문이 아니라 안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10분, 본문을 소리 내어 읽고 질문 앞에 정직하게 머물러 보십시오.

기간6일 과정 (월~토)
소요 시간매일 10분
준비성경책, 필기구, 조용한 장소
순서말씀 → 묵상 → 질문 → 기도
열왕기상 11:1 · 본문 말씀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열왕기상 11:4 · 한 주간 암송구절
그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6일 묵상 한눈에 보기

일차본문 및 제목한 주간 묵상 되새김
Day 1 · 월사랑하였더라 (열왕기상 11:1–2; 신명기 7:3–4)죄는 무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방향 문제다.
Day 2 · 화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열왕기상 11:4; 역대하 16:9)온전함은 흠 없음이 아니라 나뉘지 않음이다.
Day 3 · 수빼지 않고 더했을 뿐 (열왕기상 11:5–8; 마태복음 6:24)혼합주의는 배교보다 위험하다. 하나님은 전부를 요구하신다.
Day 4 · 목하나님이 일으키신 대적자 (열왕기상 11:14,23,26; 히브리서 12:6)대적자조차 주의 손 안에 있다. 징계는 버리심이 아니라 돌이키심이다.
Day 5 · 금애굽은 산성이 아닙니다 (열왕기상 11:17–18,40; 시편 46:1–3)세상의 힘으로 얻은 안전은 그 세상의 힘에 회수된다.
Day 6 · 토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열왕기상 11:11–13; 요한복음 21:15–17)개혁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걷어내는 것이다.
DAY 1월요일

사랑하였더라

열왕기상 11:1–2; 신명기 7:3–4 · 오늘의 말씀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왕상 11:1)
"그와 혼인하지도 말지니 ...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신 7:3-4)

하나님은 이미 신명기 7장에서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통혼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이키리라. 솔로몬이 이 말씀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그는 성전 봉헌식에서 온 백성 앞에 율법을 인용하여 기도했던 사람이요,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를 선물로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문제는 지식의 부족이 아니었습니다. 알면서 사랑했습니다. 죄는 무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방향 문제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몰라서 넘어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습니다. 대개는 알면서도 다른 것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넘어집니다.

본문은 '사랑하다'라는 동사를 한 단락 안에서 거듭 반복합니다. 1절에서 사랑하였고, 2절 끝에서 또 사랑하였다고 못을 박습니다. 성경이 같은 말을 두 번 쓸 때는 강조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6장 5절은 바로 그 동사로 다른 것을 명령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같은 동사입니다. 문제는 사랑의 능력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도록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사랑을 끊는 훈련이 아니라 사랑을 옮기는 훈련입니다. 오늘 하루, 무엇을 끊을까를 묻기 전에 무엇을 더 사랑하고 있는지를 물읍시다. 금지의 목록을 지키는 것보다 사랑의 방향을 돌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묵상 질문

1

내가 "알면서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지난 한 주 나의 시간과 관심이 가장 많이 흘러간 곳은 어디였습니까?

3

사랑을 끊는 대신 사랑을 옮기려면, 오늘 무엇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여, 제가 아는 만큼 사랑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말씀을 몰라서가 아니라 다른 것을 더 사랑하여 넘어졌음을 봅니다. 제 사랑의 방향을 주께로 돌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2화요일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열왕기상 11:4; 역대하 16:9 · 오늘의 말씀
"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그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왕상 11:4)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대하 16:9)

'온전함'은 히브리어 '샬렘'이며, 솔로몬의 이름 '쉘로모'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온전한 자라 불리던 사람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 이름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성경이 굳이 이 단어를 고른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아픈 평가는 남의 기준이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 받는 평가입니다.

샬렘은 흠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뉘지 않은 마음, 한 방향으로 모인 마음을 뜻합니다. 역대하 16장 9절에서 하나님의 눈이 찾으시는 '전심'이 바로 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나뉘지 않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래서 다윗이 기준이 됩니다. 다윗도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무너진 자리에서 돌이켰고, 솔로몬은 무너진 자리에 산당을 지었습니다. 차이는 죄의 크기가 아니라 회개의 유무였습니다. 나침반의 바늘은 흔들립니다. 좋은 나침반은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이 아니라 멈추면 다시 북쪽을 가리키는 나침반입니다.

본문은 이 일이 "나이가 많을 때에"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시작이 아니라 끝자락입니다. 신앙의 위기는 대개 젊은 날의 격정이 아니라 오래된 익숙함에서 옵니다. 오래 믿었다는 사실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 오래 믿었느냐가 아니라, 지금 내 마음이 몇 개로 나뉘어 있느냐입니다.

묵상 질문

1

하나님이 부르신 나의 이름(정체성)대로 나는 살고 있습니까? 어디에서 어긋나 있습니까?

2

내 마음은 지금 몇 개로 나뉘어 있습니까? 가장 큰 조각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3

신앙의 연차가 쌓이면서 오히려 무디어진 영역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여, 제 이름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흠 없는 자가 아니라 나뉘지 않은 자로 서게 하시고, 넘어진 자리에 산당을 짓지 말고 무릎을 꿇게 하옵소서. 주 앞에서 온전한 자로 다시 서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3수요일

빼지 않고 더했을 뿐

열왕기상 11:5–8; 마태복음 6:24 · 오늘의 말씀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왕상 11:7)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솔로몬은 여호와를 폐하지 않았습니다. 성전은 그대로 있었고 제사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다만 성전이 바라다보이는 산 위에 다른 신들의 산당을 하나씩 더했을 뿐입니다. 본문이 밝히는 위치를 눈여겨보십시오. "예루살렘 앞 산에" 지었습니다. 성전에서 고개만 들면 보이는 자리입니다.

이것이 혼합주의입니다. 그리고 혼합주의는 배교보다 위험합니다. 배교한 사람은 자기가 떠난 줄을 알지만, 혼합주의자는 자기가 여전히 잘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빠뜨리지 않았고 헌금을 거른 적이 없으니 문제가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51%가 아니라 전부를 요구하십니다.

주님은 이 문제를 셈이 아니라 소유의 문제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섬기기 어렵다가 아니라 섬기지 못한다입니다. 두 주인을 모시는 종은 없습니다. 한쪽을 주인으로 삼는 순간 다른 쪽은 이미 짐이 되었을 뿐입니다.

우리 마음의 산당은 대개 거창하지 않습니다. 주일에는 결코 꺼내지 않는 어떤 계획, 기도 제목에서 늘 빠지는 어떤 관계, 하나님께 물어본 적이 없는 어떤 통장. 헐어야 할 것은 산당 자체가 아니라 그 산당을 남겨 두고도 편안한 마음입니다. 훗날 요시야가 왕이 되어 바로 이 산당들을 헐어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왕하 23:13). 내가 헐지 않은 것은 누군가가 대신 헐어야 합니다.

묵상 질문

1

신앙생활은 유지하면서도 절대 내어드리지 않는 나만의 영역이 있습니까?

2

내 기도 제목에서 늘 빠지는 항목은 무엇입니까? 왜 빠집니까?

3

오늘 하루 안에 헐 수 있는 가장 작은 산당 하나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여, 제 마음에 조용히 세워 둔 산당을 오늘 헐게 하옵소서. 더하기만 하고 빼지 못한 저를 용서하시고, 반쪽이 아니라 전부를 드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4목요일

하나님이 일으키신 대적자

열왕기상 11:14, 23, 26; 히브리서 12:6 · 오늘의 말씀
"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 하나님이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 대적이 되게 하시니" (왕상 11:14, 23)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히 12:6)

하닷, 르손, 여로보암. 성경은 이들을 "대적자"라 부르는데 히브리어로 '사탄'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분명히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일으키셨다고. 하나님께서 친히 사탄을 일으키셨다는 이 문장은 읽을 때마다 우리를 멈춰 세웁니다.

대적자조차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이것은 두려운 진리인 동시에 놀라운 위로입니다. 내 인생을 흔드는 그 일이 하나님의 손을 벗어난 우연이 아니라면, 그 흔들림에도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버리심이 아니라 돌이키심입니다.

히브리서는 징계를 아들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남의 집 아이는 야단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매를 드는 것은 그 아이가 자기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징계가 아프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프되 버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흔들림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방치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의 자비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솔로몬이 노년에 이르기까지 오래 참으셨고,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먼저 흔드셨습니다. 흔들림은 무너짐 이전에 주시는 경고음입니다. 지금 내 삶을 흔드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 나를 넘어뜨리려는 손인지 나를 깨우려는 손인지 오늘 다시 물어봅시다.

묵상 질문

1

지금 나를 흔드는 일 앞에서, 나는 원망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돌이키고 있습니까?

2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징계가 오히려 은혜였던 경험이 있습니까?

3

지금의 흔들림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려는 한 가지는 무엇이겠습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여, 저를 흔드시는 일까지도 주의 손 안에 있음을 믿습니다. 징계가 버리심이 아니라 아들 삼으심의 증거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 흔들림으로 저를 돌이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5금요일

애굽은 산성이 아닙니다

열왕기상 11:17–18, 40; 시편 46:1–3 · 오늘의 말씀
"하닷은 ... 애굽으로 갔으니 ... 바로가 그에게 집과 먹을 양식을 주며 또 그에게 토지를 주었더라" (왕상 11:17-18)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 46:1)

세 대적자의 공통점은 모두 애굽에서 자라고 힘을 길렀다는 것입니다. 하닷은 어려서 애굽으로 도망하여 바로의 처제와 결혼했고, 여로보암도 시삭에게로 피신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가장 먼저 손잡은 나라가 바로 그 애굽이었습니다. 안전을 위해 바로의 사위가 되었는데, 바로 그 애굽이 자기를 무너뜨릴 사람들을 길러냈습니다.

세상의 힘으로 얻은 안전은 결국 그 세상의 힘에 회수됩니다. 돈으로 안심을 사면 돈이 주인이 되고, 인정으로 안심을 사면 인정이 사슬이 됩니다. 담보로 잡힌 집에서 사는 사람은 그 집의 주인이 아닙니다. 세상에 안전을 맡긴 사람의 평안은 늘 남의 손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애굽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섰습니다. 이스라엘이 구원받아 나온 곳이면서, 위기 때마다 돌아가고 싶어지는 곳이었습니다. 이사야는 훗날 이렇게 꾸짖습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31:1). 솔로몬의 애굽 동맹은 그 긴 목록의 첫 장이었습니다.

시편 46편은 다른 산성을 노래합니다.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고백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것을 소유해서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분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의 산성은 어디입니까? 그 성벽은 누가 쌓았습니까?

묵상 질문

1

내 인생의 애굽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나를 지키고 있습니까, 지배하고 있습니까?

2

위기가 닥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대책은 무엇입니까? 기도는 몇 번째입니까?

3

이번 주에 애굽을 의지하던 손을 놓기 위해 내릴 수 있는 결정 하나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여, 애굽을 의지하던 손을 놓겠습니다. 세상이 준 안전이 어느새 저를 지배하고 있었음을 봅니다. 오직 주만이 저의 산성이시니, 흔들리는 자리에서 주를 붙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6토요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열왕기상 11:11–13; 요한복음 21:15–17 · 오늘의 말씀
"오직 내 종 다윗과 내가 택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왕상 11:13)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 21:15)

하나님은 솔로몬의 나라를 찢으시면서도 한 지파를 남기셨습니다. 심판의 한복판에 남겨 두신 이 한 지파가 열왕기 전체를 지탱하는 은혜의 끈입니다. 그리고 그 남은 유다에서 참 왕이 오셨습니다.

솔로몬과 그리스도를 나란히 놓아 봅시다. 솔로몬은 온전함을 잃었으나 그분은 끝까지 아버지 앞에 온전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천 명을 사랑하다 마음을 잃었으나 그분은 한 신부인 교회를 사랑하여 목숨을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으나 그분은 예루살렘 밖 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솔로몬은 대적자를 만났으나 그분은 우리의 참 대적자를 이기셨습니다.

이번 주 우리가 본 것은 첫날의 '사랑하였더라'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주님이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물으신 것은 "왜 그랬느냐"가 아니었습니다. 넘어진 자에게 필요한 것은 심문이 아니라 회복이며, 회복은 언제나 사랑의 방향을 다시 묻는 데서 시작됩니다.

진정한 개혁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걷어내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평생 더했고 하나님은 마침내 걷어내셨습니다. 비본질을 걷어내면 그리스도가 드러납니다. 내일 주일, 무엇을 더 들고 갈까 고민하지 말고 무엇을 내려놓고 갈지를 생각합시다. 그 사랑 앞으로 나아갑시다.

묵상 질문

1

한 주간을 돌아보며, 나는 주님의 이 질문에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2

내 신앙에서 걷어내야 할 비본질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3

내일 예배에 무엇을 내려놓고 나아가기 원합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여, 사랑합니다. 넘어진 저를 심문하지 않으시고 다시 물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더하려는 손을 멈추고 걷어내는 은혜를 배우게 하시며, 제 안에 오직 그리스도만 남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 주간 정리 — 주일예배를 준비하며

"대적자들" — 열왕기상 11:1-8

Day 1죄는 무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방향 문제다.
Day 2온전함은 흠 없음이 아니라 나뉘지 않음이다.
Day 3혼합주의는 배교보다 위험하다. 하나님은 전부를 요구하신다.
Day 4대적자조차 주의 손 안에 있다. 징계는 버리심이 아니라 돌이키심이다.
Day 5세상의 힘으로 얻은 안전은 그 세상의 힘에 회수된다.
Day 6개혁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걷어내는 것이다.

한 주간의 기도제목

1

나뉜 마음의 회복 — 여호와 앞에 온전한 마음을 주옵소서.

2

세상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결정 — 애굽이 아닌 여호와를 산성 삼게 하옵소서.

3

다함교회와 다음 세대의 개혁 — 비본질을 걷어내고 오직 그리스도만 남기게 하옵소서.

주일을 준비하는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한 주간 말씀 앞에서 제 마음의 산당을 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알면서도 다른 것을 더 사랑했던 마음을 돌이켜 주시고, 나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옵소서. 내일 선포될 말씀을 사모하게 하시고, 더 들고 가는 예배가 아니라 내려놓고 나아가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열왕기상 11:4
그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개혁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걷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