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 다함교회 주간 묵상집

말씀이 사건이 되다(03)

열왕기상 13:1-10

매일 정해진 본문을 소리 내어 읽고, 묵상 글을 읽은 뒤, 적용 질문에 짧게라도 답을 적어 보십시오. 마지막 기도문은 소리 내어 읽으며 자신의 기도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기간6일 과정 (월~토)
소요 시간매일 15~20분
준비성경책, 필기구, 조용한 장소
순서말씀 → 묵상 → 질문 → 기도
한 주간 암송구절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왕상 13:2)

6일 묵상 한눈에 보기

일차본문 및 제목한 주간 묵상 되새김
Day 1 · 월갈라진 나라, 갈라지지 않은 죄 (열왕기상 12:20-24; 로마서 3:22-24)월요일 — 성경의 관심은 어느 쪽이 옳은가가 아니라 인간은 어디서나 똑같이 부패한다는 것이다.
Day 2 · 화두려움이 만들어 낸 제단 (열왕기상 12:25-33; 잠언 29:25)화요일 — 여로보암은 여호와를 버린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자기 편의에 맞게 재배치했다.
Day 3 · 수가장 무서운 것은 "비슷한 것"입니다 (열왕기상 12:31-33; 갈라디아서 1:6-7)수요일 — 완전히 다른 것은 금방 알아본다. 무서운 것은 비슷한 것이다.
Day 4 · 목제단아 제단아 — 말씀이 사건이 되다 (열왕기상 13:1-5; 열왕기하 23:15-16)목요일 — 말씀은 역사를 예측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결정했다.
Day 5 · 금마른 손, 그리고 다시 살아난 손 (열왕기상 13:4-7; 로마서 2:4)금요일 — 마른 손은 심판이었으나 회복된 손은 초청이었다.
Day 6 · 토이 일 후에도 — 참된 제물이신 그리스도 (열왕기상 13:8-10, 33-34; 히브리서 10:11-12)토요일 — 요시야는 남의 뼈를 불살랐으나, 그리스도는 자기 몸을 제단에 올리셨다.
DAY 1월요일

갈라진 나라, 갈라지지 않은 죄

열왕기상 12:20-24; 로마서 3:22-24 · 오늘의 말씀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시니라" (왕상 12:24)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2-23)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갈라졌습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본능적으로 편을 나눕니다. "북쪽은 반역했고 남쪽은 정통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분열을 놓고 옳고 그름을 판정하지 않습니다. 나뉘었다는 사실만을 담담히 기록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열왕기의 긴 이야기에서 북과 남은 놀라울 만큼 동일하게 타락합니다. 유다가 조금 더 오래 버틴 것은 더 착해서가 아니라 조금 더 질겼기 때문입니다. 결국 둘 다 무너졌고 둘 다 포로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길게 논증한 끝에 내린 결론도 같습니다. "차별이 없느니라." 유대인도 헬라인도, 율법을 가진 자도 갖지 못한 자도 한 자리에 섰습니다. 사람은 어느 편에 서느냐로 의로워지지 않습니다. 편을 잘 고른 사람은 있어도, 편을 골라 의로워진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의 관심은 "어느 쪽이 옳은가"가 아니라 "인간은 어느 자리에 서도 똑같이 부패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기어이 메시아를 보내시고 기어이 당신의 백성을 돌이키십니다. 로마서도 "차별이 없느니라" 바로 다음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잇습니다. 정죄의 자리에서 끊기지 않고 은혜로 이어지는 문장, 그것이 복음입니다.

묵상 질문

1

나는 신앙 안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가르는 데 마음을 더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2

그 시선을 하나님의 자비로 옮기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3

내가 "저 사람보다는 낫다"고 비교하며 안심했던 자리는 어디입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편을 가르는 자리에서 내려와 나 자신의 부패함을 먼저 보게 하옵소서. 차별이 없다고 하신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게 하시고, 그럼에도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의 사랑을 붙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2화요일

두려움이 만들어 낸 제단

열왕기상 12:25-33; 잠언 29:25 · 오늘의 말씀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되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왕상 12:26)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잠 29:25)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친히 세우신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받은 사람이 왕이 되자마자 사로잡힌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올라가면 마음이 남쪽으로 돌아설까 두려웠습니다.

결국 그의 가장 깊은 공포는 "예배"였습니다. 백성이 참되게 예배하면 자기 정권이 흔들린다고 계산한 것입니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세우고, 산당을 짓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제사장이 되게 하고, 유다의 절기와 비슷한 절기를 자기 마음대로 정했습니다.

26절은 그 모든 일의 출발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되." 하나님께 여쭌 것이 아니라 혼잣말을 한 것입니다. 아히야를 통해 분명한 약속을 주셨던 하나님께 한 번만 물었더라면 달라졌을 일이, 혼자 셈하는 밤에 결정되었습니다. 혼잣말은 조용하지만 그 결과는 나라를 바꿉니다.

여로보암은 "여호와를 버리자"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를 "여기서" 섬기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편의에 맞게 재배치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의 가장 교묘한 얼굴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한 자리에 올무가 놓였고, 그 올무는 이후 이백 년 동안 북이스라엘의 모든 왕이 밟고 지나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묵상 질문

1

나는 하나님을 내 삶의 어느 자리로 "옮겨 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2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내 계산이 앉아 있는 영역은 어디입니까?

3

최근 중요한 결정을 하나님께 여쭙지 않고 혼자 셈하여 내린 일이 있습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님, 두려움이 내 신앙의 설계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혼잣말로 결정하지 않고 주님께 여쭈게 하시며, 나를 세우신 주님이 나를 지키실 줄 믿고 계산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3수요일

가장 무서운 것은 "비슷한 것"입니다

열왕기상 12:31-33; 갈라디아서 1:6-7 · 오늘의 말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삼았더라" (왕상 12:33)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갈 1:7)

여로보암의 종교에는 제단이 있었고 제사장이 있었고 절기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여호와"라는 이름까지 있었습니다. 없는 것은 단 하나,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형식은 다 갖추었는데 근거가 없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것은 사람들이 금방 알아봅니다. 무서운 것은 비슷한 것입니다. 이단이 무서운 이유는 성경을 안 쓰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을 쓰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부인해서가 아니라 십자가라는 단어를 우리보다 더 자주 말하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다른 복음은 없다"고 못 박으면서, 문제는 복음을 없애는 자들이 아니라 복음을 "변하게" 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화폐 감별 전문가는 위조지폐를 연구하지 않고 진짜 지폐만 수만 번 만진다고 합니다. 손끝이 진짜를 기억하면 가짜는 만지는 순간 알아차립니다. 거짓을 이기는 길은 말씀을 손끝이 기억할 때까지 붙드는 것입니다.

본문이 쓰는 표현을 눈여겨보십시오.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에." 히브리어 본문은 "그의 마음에서 지어낸 달"이라는 뉘앙스로 읽힙니다. 예배의 날짜 하나까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가 정한 것입니다. 우리 신앙에도 그런 항목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셔서가 아니라 내가 편해서 붙들고 있는 것, 성경이 말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하기에 따라가는 것. 오늘 그 항목에 이름을 붙여 봅시다.

묵상 질문

1

내 신앙생활에서 "형식은 갖추었으나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근거가 빠진" 부분은 무엇입니까?

2

내가 지금 붙들고 있는 신앙의 습관 하나를 골라, 그 근거가 성경인지 편의인지 물어보십시오.

3

말씀을 손끝이 기억하게 하려면 이번 주 무엇을 시작해야 합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님, 내가 만든 예배가 아니라 주께서 명하신 예배를 드리게 하옵소서. 비슷한 것에 속지 않도록 진짜를 날마다 만지게 하시고, 말씀을 손끝이 기억하도록 붙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4목요일

제단아 제단아 — 말씀이 사건이 되다

열왕기상 13:1-5; 열왕기하 23:15-16 · 오늘의 말씀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왕상 13:2)
"요시야가 ... 그 산당을 헐고 ... 사람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사르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왕하 23:15-16)

유다에서 이름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옵니다. 성경은 그를 그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만 부릅니다. 그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무엇을 들고 왔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그는 바로 옆에 서 있는 왕을 향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돌덩이를 향해 외칩니다. "제단아 제단아." 하나님 앞에서 그 왕은 대화 상대조차 되지 못한다는 통렬한 선언입니다.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의 이름이 불립니다. 요시야. 약 300년 뒤, 열왕기하 23장에서 요시야는 벧엘의 제단을 헐고 산당 제사장들을 제단 위에서 죽이며 사람의 뼈를 불사릅니다. 그리고 그 대목의 끝에 열왕기의 후렴이 붙습니다.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300년 전에 던져진 한 문장이 300년 뒤 사건의 각주가 되어 다시 읽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를 예측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결정했습니다. 말씀은 종교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가장 강력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흔히 보이는 것을 현실이라 부르고 말씀을 위로라 부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순서를 뒤집습니다. 눈에 보이는 제단은 300년을 버티다 무너졌고, 보이지 않던 한 문장은 300년을 건너와 그 제단을 헐었습니다.

묵상 질문

1

나는 무엇을 "현실"이라 부르고 무엇을 "위로"라 부르고 있습니까?

2

그 순서를 뒤집는다면 오늘 나의 하루는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

3

오래 기다려야 하는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님, 보이는 것이 아니라 들은 말씀 위에 서게 하옵소서. 말씀이 가장 강력한 현실임을 믿게 하시고, 오래 기다려야 하는 약속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5금요일

마른 손, 그리고 다시 살아난 손

열왕기상 13:4-7; 로마서 2:4 · 오늘의 말씀
"왕의 손이 다시 성하여 전과 같이 되니라" (왕상 13:6)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롬 2:4)

여로보암이 "그를 잡으라" 하며 손을 뻗는 순간 그 손이 말라 굳어 버립니다. 붙잡으려고 뻗은 그 자세 그대로 정지해 버립니다. 이 장면은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의 인생 전체를 요약한 사진입니다. 그는 평생 무언가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고, 그 뻗은 손이 결국 그를 마르게 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간청하자 하나님의 사람이 기도했고, 그 손이 회복됩니다. 심판을 선포하신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회개의 문을 열어 두십니다. 마른 손은 심판이었지만 회복된 손은 초청이었습니다. "여로보암아, 아직 늦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회개가 아니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였습니다. 은혜를 보고도 거래를 떠올리는 마음, 그것이 굳어진 마음입니다. 손은 풀렸는데 마음은 그대로 굳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가장 무서운 멸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심판의 유예가 아니라 회개로의 인도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 인자하심을 "아직 괜찮다"는 신호로 읽습니다. 오래 참으심을 묵인으로 오해하는 순간, 은혜는 사람을 굳게 만듭니다. 오늘 내게 주어진 평안이 유예인지 초청인지 분별합시다.

묵상 질문

1

최근 하나님이 나에게 내밀어 주신 "회복의 손길"이 있었습니까?

2

나는 그 앞에서 회개했습니까, 아니면 계산했습니까?

3

지금 누리는 평안을 나는 "아직 괜찮다"는 신호로 읽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님, 손만 고침받고 마음은 굳어 버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오래 참으심을 묵인으로 오해하지 않게 하시고,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회개로 이끄시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DAY 6토요일

이 일 후에도 — 참된 제물이신 그리스도

열왕기상 13:8-10, 33-34; 히브리서 10:11-12 · 오늘의 말씀
"이 일 후에도 여로보암이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왕상 13:33)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히 10:12)

하나님의 사람은 왕의 집 절반을 준다 해도 떡도 물도 먹지 않겠다고 단호히 거절합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진리는 타협의 식탁에 앉지 않습니다.

반면 여로보암은 제단이 갈라지는 것을 보고도, 자기 손이 말랐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겪고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이 일 후에도." 이 다섯 글자가 참으로 무섭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건의 강도가 아니라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요시야는 벧엘의 제단을 헐었지만 그의 개혁도 실패했습니다. 인간의 개혁으로는 인간의 제단을 완전히 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시야보다 크신 다윗의 자손을 보내셨습니다. 요시야는 다른 사람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살랐지만, 예수님은 자기 몸을 제단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그분은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제물이 되셨습니다.

히브리서는 두 종류의 제사장을 나란히 세웁니다. 한 사람은 날마다 서서 같은 제사를 반복하지만 결코 죄를 없게 하지 못하고, 한 분은 영원한 제사를 단번에 드리시고 앉으셨습니다. 서 있는 제사장과 앉으신 제사장. 그 '앉으심'이 우리의 안식입니다. 우상숭배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모든 삶의 태도입니다. 내일 주일, 우리가 만든 모든 제단을 내려놓고 그리스도 위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합시다.

묵상 질문

1

내가 몰래 세워 둔 "벧엘의 제단"은 무엇입니까?

2

내일 예배에 나아가기 전 오늘 내려놓아야 할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3

이번 한 주 묵상 가운데 가장 마음에 남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4

오늘의 묵상을 적어보세요

오늘의 기도

주님, 내가 세운 제단을 주의 말씀으로 갈라 주옵소서. 사건의 강도가 아니라 말씀에 순종함으로 변화되게 하시고, 스스로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만을 의지하여 내일 주의 전에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 주간 정리 — 주일예배를 준비하며

"말씀이 사건이 되다(03)" — 열왕기상 13:1-10

Day 1월요일 — 성경의 관심은 어느 쪽이 옳은가가 아니라 인간은 어디서나 똑같이 부패한다는 것이다.
Day 2화요일 — 여로보암은 여호와를 버린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자기 편의에 맞게 재배치했다.
Day 3수요일 — 완전히 다른 것은 금방 알아본다. 무서운 것은 비슷한 것이다.
Day 4목요일 — 말씀은 역사를 예측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결정했다.
Day 5금요일 — 마른 손은 심판이었으나 회복된 손은 초청이었다.
Day 6토요일 — 요시야는 남의 뼈를 불살랐으나, 그리스도는 자기 몸을 제단에 올리셨다.

한 주간의 기도제목

1

우리의 예배가 습관이나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드리는 참된 예배가 되게 하소서.

2

눈에 보이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강력한 현실로 믿고 기다리는 믿음을 주소서.

3

은혜를 받고도 굳어지는 마음을 깨뜨리시고 오늘 주신 회개의 기회를 붙들게 하소서.

주일을 준비하는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한 주간 말씀 앞에서 제 마음에 세워 둔 제단을 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을 버리지는 않았으나 제 편의에 맞게 옮겨 놓았던 것을 회개합니다. 비슷한 것에 속지 않도록 진짜 말씀을 손끝이 기억하게 하시고, 보이는 것보다 들은 말씀을 더 큰 현실로 붙들게 하옵소서. 내일 선포될 말씀을 사모하게 하시고, 스스로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 위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번 주 찬송 — 새찬송가 204장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한 주간 암송구절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서 제물로 바칠 것이요" (왕상 13:2)